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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정보

수행과 달성: 사성제에 달성한 방법

by jiji1 2022. 9. 20.

실천 및 달성

사성제라는 고귀한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명상이라는 것을 통해 생각을 분석해야 한다고 싯다르타는 말했다. 경전에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안팎의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을 챙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는 고요한 장소를 찾아 다리를 꼬고 앉아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호흡에 집중하면서 전신에 대한 인식을 발달시켰으며, 숨을 잔잔히 유지시키고, 생각에 초점을 꾸준히 맞추었더니 황홀감과 여유로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싯다르타는 또한 그러한 감정들이 온몸에 스며들고 가득 차서 결국 디야나라는 해탈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올바른 집중력을 가지게 되면, 황홀함과 편안함을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며, 순수한 마음가짐과 평온한 상태로 신체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올바른 인식의 상태는 선명하고 또렷한 감각에 집중되는 힘을 준다. 호흡을 할 때에는 호흡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는 호흡과 함께 생각을 인식해야 한다. 싯다르타는 마음이 안정되는 방식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수련 단계를 거쳐, 마침내 집중의 과정을 통달하게 된 것이다. 그의 깨달음은 관능적인 쾌락에 대한 애착을 없앨 수 있었으며, 관능적인 것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식어버리는 각성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싯다르타는 집중력에 대해서는 완전히 숙달된 사람이었다. 다양한 정신 상태를 분석하고, 내면의 모든 감정들을 알아차림으로써, 정신적인 미묘한 즐거움뿐만 아니라, 성찰에서 생기는 통찰력도 얻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사성제를 통해 이러한 모든 현상을 인식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싯다르타는 그의 깨달음을 불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아직도 왜 싯다르타가 그의 가르침의 목표를 묘사하기 위해,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였는지는 서양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불이라고 표현한 까닭을 이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만약 불이 꺼지면 어떻게 되는가? 불은 태울 수 있는 물질과 산소가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조건이 갖추어져야 불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불이라는 용어를 싯다르타가 사용한 것은 얼핏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또한 불은 불타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며, 종국에는 모든 조건들이 사라졌을 때, 불도 같이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조건들을 없애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든 간에 그것은 마침내 없어지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이 싯다르타가 말한 각성이며, 아라한에 이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아라한

아라한의 의미는 죽지 않는 자 또는 조건 없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다시 말해, 더 이상의 윤회를 하지 않는 존재로써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싯다르타가 맨 처음 설교를 전한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아라한이 되기 위해, 소위 말하는 7번의 환생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 당시 널리 만연했던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7번의 환생을 거듭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반면 싯다르타의 경우에는 단 며칠 만에 완전한 각성을 얻었기 때문에, 기존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논리로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힘들게 된 것이다. 나중에 싯다르타의 비자아적인 부분에 대한 담론을 듣고는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초기 많은 제자들이 가르침을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명백한 이유는 사성제라는 논리로 설명되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타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굳이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싯다르타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헛된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단지 깨우치기 위해서는 교리에 대한 확신, 정신력, 집중력, 분별력을 기르기만 하면 될 터였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어떠한 가르침을 펼쳐야 적합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 정도에는 네 가지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첫 번째로, 간단한 가르침을 듣고 깨우치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로는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에야 깨우치는 사람이다. 세 번째로는 더욱 다양한 예시와 사례를 통해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며, 네 번째로는 그가 한 설명을 실제로 실천해서 경험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