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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정보

부처의 죽음: 불교의 또 다른 국면

by jiji1 2022. 9. 22.

죽음의 임박

45년 동안 부처가 된 싯다르타는 갠지스강 중부의 평야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에는 금욕주의자, 브라만, 왕족, 평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질문을 했고, 싯다르타는 그 질문에 기적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싯다르타의 이러한 설교 행위는 그가 깨우친 법, 즉 달마를 전파하며, 영적인 성장을 돕는 것이었다. 79세에 싯다르타는 라자그라를 떠나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바이살리에 도착할 때까지 북쪽과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나갔다. 경전에서는 싯다르타가 그가 열반하기 전 마지막 순간에 아난다에게 네 가지 성취, 다시 말해 사성제를 어떻게 수행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난다는 아직 자신이 겪어야 할 업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지만, 마라는 싯다르타에게 다가가서 곧 열반에 들 시간이 왔음을 알렸다. 이는 그가 최종적인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위대한 인물도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못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싯다르타는 알겠다고 마라에게 말했고, 지금껏 그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자신이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완수한 터였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스스로 삶을 더 연장시킬 능력이 있었지만,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며 열반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열반 이야기

싯다르타가 열반에 든 후 제1차 소집회의에서 아난다는 자신의 스승이 자기에게 얘기한 것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주게 된다. 이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자면, 싯다르타는 올바른 마음 챙김, 올바른 노력을 기반으로, 욕망, 성적인 쾌락, 차별적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으며, 수행을 위해서는 확신, 활력, 집중력, 분별력을 가지고, 정신적 평온함과, 황홀함을 직접 맛보아야 수행을 지속할 수 있다고 얘기했음을 전했다. 이는 전적으로 정신적 자질의 발달을 다루는 것으로, 싯다르타는 이러한 자질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많은 제자들은 싯다르타가 언급한 마음 챙김에 기초하여, 사성제에 대한 교리를 수행을 통해 경험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싯다르타가 얻었던 깨달음을 자신들도 얻을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남기에 오랫동안 보존하겠다고 선언했다. 싯다르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잘 알려진 이야기는 싯다르타가 대장장이 쿤다의 집에서 식사를 했던 사건이다. 싯다르타는 오염된 버섯을 많이 먹은 후, 심한 복통을 앓게 됐다고 한다. 싯다르타는 이러한 복통을 이겨가며,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죽어가는 싯다르타 곁에 모인 승려들은 싯다르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제자들은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았지만, 싯다르타의 병세가 악화되자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밤이 깊었으며, 어느덧 새벽이 다가오자, 싯다르타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권고를 했다고 전해진다. 조건이 있는 것들은 원래 상하기 쉽다. 깨달음을 모색하는 데 신중하라라고 말이다. 그렇게 싯다르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제자들은 명상에 잠기며 싯다르타가 말한 바를 침착하게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장례식

부처가 된 싯다르타는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명상적인 고요 속에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경전에서는 그의 죽음을 지진과 천둥을 통해 열반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브라흐마와 사크라는 싯다르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를 낭송했고, 싯다르타의 사촌들을 포함한 모든 승려들은 그가 죽자 깊은 탄식을 터뜨렸다. 제자 가운데 아누루다라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통에 잠기는 것은 모든 조건 없는 것에 대한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상기시켰다. 쿠시나가리 사람들은 싯다르타가 죽은 그다음 날 와서 6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죽음을 애도했다. 싯다르타는 참으로 복이 많은 자였다.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의 열반을 축하하는 춤을 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고, 화환을 바치고, 싯다르타의 몸을 여러 겹의 비단으로 번갈아 가며 싸서 기름을 가득 채운 쇠 상여에 넣었다. 싯다르타가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 8명의 추장들은 상여를 북문을 통해 동쪽으로 운반했다. 이는 부족의 사당으로 향하는 마을의 문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싯다르타의 시신을 화장했다. 사람들이 아난다에게 싯다르타의 유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아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유해는 임금님의 것과 같으니, 시체를 화장하고, 사거리에 부도를 만들어 유물을 모시십시오라고 말이다. 부도는 일종의 성스러운 상징이다. 당시 인도에는 죽은 사람의 사당과 부도가 많았는데, 이는 예배와 숭배를 위해 남겨두는 하나의 종교적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