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적 자료
부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후의 이전 자료를 활용하여 추정해 볼 수 있다. 많은 불교 신자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신화적 구조와 문학적 설명으로 된 규범적 틀 안에서 대부분의 문헌들은 부처님을 하나의 인간적 존재로 보았다. 문헌들은 일종의 서사시 형태로, 부처를 영웅화시키고,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이었다. 문헌을 기록한 자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가가 아니라 일종의 시인과 사상가, 추종세력들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문헌에서는 그를 최소의 인간으로 칭찬하며, 영웅은 갈등을 경험하는 인간으로 설명했다. 부처도 유혹을 겪을 수 있으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과정을 거부하며, 참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떠한 정해진 운명이나 신의 개입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이며,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동기부여를 받으며, 그 과정에서 용기, 꾸준함, 진취성, 인간적인 미덕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수양의 시간을 통해, 싯다르타는 시련을 겪는 내내 섬세한 감수성을 유지했다고 문헌들은 설명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위엄을 보이며, 부처를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했던 것이다.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본 고타마에 대한 탐구는 다른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에 대한 탐구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잣대를 적용해 볼 수 있다. 부처나 예수에 대해 설명한 과거의 문헌들은 오직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적힌 책들이며, 어느 정도의 편파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 관련 문헌을 찾아보면, 부처의 전기에 대한 단일 판본이 없고, 어떤 판본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부처의 일생
석가모니 부처라고 불리는 싯다르타는 갠지스강 평야 북동쪽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귀족계급의 일원이었다. 히말라야 산기슭 바로 아래에 살면서, 그들은 브라만 계급의 씨족 이름인 고타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수도다나는 마을의 최고 귀족으로 카필라바스투라는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러한 카필라바스투는 오늘날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서 고고학자들이 잠정적으로 확인한 유적지이다. 나중에 불교 연대기 작가들은 수도다나를 인도에서 군주제가 실행됐을 당시의 왕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더 이른 시기로 보인다. 문헌들을 근거로 설명하자면, 수도다나는 단순히 사키아 농경 공화국의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다나가 지배한 지역은 그 당시의 많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싯다르타의 인생이 끝날 무렵에, 가까운 지역이었던 코살라국에 합병되었다. 실질적으로 불교의 전통은 싯다르타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최근의 어떤 자료에서는 그의 출생이 기원전 624년 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기존의 의견에 따르면, 기원전 566~448 세기 경 많은 사람들이 바이사카의 4~5월 즈음 어느 날 보름달이 떴을 때 그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그의 어머니 마야가 옆구리를 통해, 흰 코끼리가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잉태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마야의 출산 시간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 마야는 카필라바스투 근처에 있는 룸비니의 숲이 우거진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통증이 있으며, 마침내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싯다르타를 낳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갓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어서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생애라고 선언했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위해 태어난 아이였던 것이다. 싯다르타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타라는 나이 든 현인이 아기를 관찰하고 아이가 곧 나중에 부처님이 될 것을 예언했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기로 선택했을 때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만약 이 지역을 떠나지 않으면, 그는 인도 아대륙 전체를 통치하는 보편적인 군주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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