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적 공생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싯다르타는 속박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치료법은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이를 불교의 핵심으로 여기게 된다. 싯다르타는 이를 불교의 교리, 실천, 열반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달성은 계급과, 성별 등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교리적 수준에서 봤을 때, 종속적 공생은 조건부 경험에 대한 불교식 관점의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범주는 궁극적인 윤회의 요소를 경험으로 보았으며, 인과 관계의 패턴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부분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의존적 공생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경험을 함께 하느냐에 따라 과보와 업보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성취 수준에서 본 종속적 공동 성장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종속적 공동 성장을 위해서는 불교적 각성 경험과는 약간은 구별되는 특징으로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싯다르타의 고통에 대한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현상학과 비슷했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수행을 통해 싯다르타는 현재 인식을 기반으로 명백한 원인과 결과의 패턴에 주의를 집중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몸소 경험한 그 모든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에 기초하여 경험을 분석했다. 이러한 경험은 두 가지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이 그것이다. 우선 첫 번째 부분은 여섯 가지 감각 분야로, 시각, 청각, 냄새, 맛, 촉각, 그리고 관념이다. 앞에 다섯 개의 감각 부분은 형태의 범주에 속하고, 마지막 관념은 이름의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감정, 고통, 지각, 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오직 특정 조건에 부합했을 때에만 이러한 것들을 인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건화와 무조건화
따라서 초기 경전들은 조건화와 무조건은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전의 어떤 한 초기 구절은 싯다르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조건화된 것은 조건 없는 것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다라고 말이다. 조건화로 인한 발생한 모든 현상들은 고통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 조건화 현상의 본질은 완전히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싯다르타는 말했다. 고통은 절대적인 자유 즉 열반이나 해탈에서는 생성될 수 없는 결과물이다. 왜냐하면 조건화의 특성상 원인들이 차례로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조건이 없다면, 조건이 조건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조건 없음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건화된 것들을 내부에서 풀어내고,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싯다르타가 말한 대로 고통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고통 없음을 경험하기 위해, 하나의 조건적 요소가 다양한 범주로 확장되는 패턴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조건화의 영역은 다양한 감각 분야와 함께 연결되어 돌아간다. 고통은 조건화된 상황 속에서 발생하고, 조건화된 상황은 또한 고통을 주는 등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생긴 조건화의 요소들을 발견하여 해체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싯다르타가 경험한 가장 독특한 통찰 중 하나이다. 그의 깨달음은 싯다르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조건화된 우주 전체가 모두 이 하나의 패턴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건을 없애면, 고통이 사라질 수 있으며, 반대로 고통을 없애려면, 조건화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가능한 것이다. 모든 괴로움, 슬픔, 분노, 질투, 노여움 등의 감정들은 바로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서 발생되는 느낌들이다. 때문에, 고통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가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짓는 조건화를 깨부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편한 감정들은 해소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싯다르타의 이러한 깨달음은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것으로, 뒤의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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